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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코칭의 힘 -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우리들한의원 2010. 2. 28. 03:23

 

사실 저는 피겨스케이팅을 잘 모릅니다. 아마 김연아가 없었더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제가 이 두 선수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극명하게 대조되는 코치의 스타일 때문입니다.

브라이언 오서와 타티아나 타라소바 코치.

                                        

이 두 사람은 진정한 코칭이란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이 두 선수들이 어쩌면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성공과 좌절(또는 실패)의 경험은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매순간 경험하는 것이면서도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기에, 코치로서 그 순간을 잘 소화할 수 있는, 그리고 고객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코칭할 수 있는 역량을 얻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온전히 저의 주관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코치분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수집에 있어서는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100% 확신할 수는 없네요.
결론은 알아서 잘 걸러 들으시라는 거죠 ^-^ 
그리고 파란색으로 표시된 단어나 구절들은 <<이너게임>> - 티모시 골웨이 (코칭에 관심 있으신 분께는 반드시 일독을 권합니다) 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힙니다. 읽어보신 분들에게는 좀 더 공감이 가실수도 있겠네요.

 


<그들의 만남>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서는 2006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최상의 팀웍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때 상황을 보자면, 한국의 코치진은 매번 바뀌었고 대부분의 연기지도를 어머니가 해오던 상황에서 전문코치경력도 없는 브라이언 오서에게 코치를 맡긴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도전이었죠.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로서 연아를 주시하던 일본 빙상연맹 측에서는 '어리석은 선택'이라며 말들이 많았습니다.

오서의 입장에서도 그것은 도전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프로선수로서의 공연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데다 파트타임으로 몇몇선수들을 지도했을 뿐, 풀타임코치를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행복한 스케이터를 만들어 달라' 는 요청에 마음이 기울어 김연아선수를 맡기로 했는데 그것은 연아에게 하늘이 내리신 기회였습니다.

만약 브라이언 오서가 이미 코치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면 지금의 김연아 선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코치로서의 경력이 없었기에 스케이팅을 잘하기 위한 기계적 훈련단계을 밟기보다는 연아가 한 인간으로서, 선수로서 성장하는데 순수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연아에게 기술적인 측면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김연아는 말수가 적고 표정이 없는 수줍은 소녀였습니다. 게다가 잦은 부상으로 인한 슬럼프로 스케이팅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죠. 기술적으로는 거의 완성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연기가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는 터였습니다. 오서는 그점을 간파하고 연아에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제일 처음 한 것은 연아를 '웃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무가인 데이빗 윌슨과 더불어 그는 코미디언이 되길 자처하며 연아를 웃겼습니다.

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연아는 10대의 발랄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윌슨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이 더해짐으로 인해 그냥 '잘하는 스케이터'가 아닌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죠.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강압적으로 훈련을 시키거나 기술에 대한 반복적인 연습을 강요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선배 스케이터이자 인생 선배로서 그들이 스케이팅에 대한 자신감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애정을 갖고 인격적으로 성장해가기를 원하며, 그것이 진정 그들이 누려야 할 행복이라고 믿습니다. 때문에 이것저것 지적하거나 하지 않고 적절한 순간에 선수가 필요로 하는 조언을 해주며, 전체적인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있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정확히 간파하고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오서코치를 만나기 전까지 하나하나 지적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한국의 코치들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서를 만난 후 '내가 얼음 위에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 이라며 굳건한 파트너쉽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오서코치도 '내 인생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라며 그녀에 대한 신뢰를 내비쳤고요.

코칭은 파트너쉽입니다. 정말로 100%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이죠. 코치와 코치이(또는 고객)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코칭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의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코치는 성과로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성과는 코치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타티아나 타라소바 코치는 2008년도부터 아사다마오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녀 자신이 선수시절 스타였었고 지금껏 수많은 선수들을 양성하여 '금메달 제조기' 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코치로서의 명성을 날리고 있죠. 천재소녀와 스타코치의 만남은 최고의 조합이라 여겨졌지만 정작 아사다는 그녀와 만난 이후 점점 내리막길을 걷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성과에 대해 판단하기보다 제가 주목한 것은 경기에 나서기 직전 타라소바코치와 아사다의 표정입니다.



 

타이틀매치를 앞두고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의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타라소바코치는 굳은 표정으로 아사다에게 뭔가를 주입하는 듯한 모습이고, 아사다는 정신교육을 받듯 그것을 마음속에 새겨넣는 모습이랄까요......
대부분의 스포츠 코치들이 그런 방식으로 선수의 마인드를 강화하고 필승 의지를 다집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과연 지금의 아사다에게 정말 필요한 방식인지 의문이 듭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코칭은 오히려 성과를 낮출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사다와 타라소바 코치가 만난 후로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시즌 경기를 앞두고 전체적인 조율을 하기 위한 짧은 기간 뿐이며 그 외에 아사다는 일본에서 혼자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일단 타라소바 코치는 가르치는 학생이 많아서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자주 오기 어렵고 아사다는 일본에서 훈련하는 것을 편하게 느낀다고 하니 두 사람이 공감을 나누기 위한 시간은 부족해보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간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 인터뷰때 보이기도 했죠.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나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사다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발전시키는 게 초점을 두기보다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이 정도도 못할 리 없다' 는 일종의 코치자신의 개인적인 욕망과 의도입니다. 제게는 그녀는 아사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어떻게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는지 방법과 노하우를 잘 숙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선수는 개개인이 다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까지 성공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아사다에게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죠.
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의 전력을 최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특유의 전법을 사용하였듯이, 그 선수에게 맞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올바른 코치의 자세일 것입니다. 선수는 점프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나는 안다 VS 나는 모른다 >

 

아는 분은 아시리라. 그놈의 '전문지식'이 코치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요.

두 코치의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브라이언 오서만 해도 현역 선수시절 별명이 '미스터 트리플 악셀' 이었을 정도로 기술적인 측면에 있어서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자신이 잘 아는 점프라고 해서 연아에게 그것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반면 타라소바코치는 아사다가  자신없어 하고 성공률이 50%밖에 되지 않는데도 트리플 악셀을 프로그램에 꼭 넣는데다  올림픽 시즌에는 그 횟수를 늘릴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아사다 본인이 트리플악셀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해도)

전문지식이란 코치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자 그 지식을 들먹이고자 하는 욕망과 에고를 버리기란 인간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도 친구랑 얘기하다가도 내가 잘 아는 주제가 나오면 침을 튀기며 '이것은 이러하고 저것은 저러하니 이렇게 해야해~!' 라고 열변을 토하지 않나요.


코칭의 기본 전제는 '나는 모른다' 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다' 란 생각은 굉장히 오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황은 계속 변하고 인간도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는데, 어제와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을 수도 있는데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요? 그것은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하거나 정의하고자 하는 일종의 에고일 뿐입니다.

 

그리고 코치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 하나는 '코치 자신의 개인적인 issue를 고객에게 push하는 것'입니다.
타라소바 코치와 만나면서 아사다는 자신의 특기인 발랄하고 투명한 느낌의 연기를 버리고 장중하고 극적인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러시아식 스타일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 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것은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 갈라쇼에서 더욱 두드러지죠. 갈라쇼 프로그램을 보면 그녀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요즘말로 블링블링한)연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진짜 아사다의 매력입니다. 그 연기를 할 때면 마치 춤을 추듯 행복한 표정으로 얼음 위를 누비는 그녀를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올림픽 대비용으로 공개된 라흐마니노프의 '종'이란 프로그램은 타라소바 코치 자신이 미쉘 콴에게 짜준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녀의 부상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이번에 다시 아사다에게 권한 것입니다.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자신이 그 음악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경기에서 보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코치의 개인적인 욕망일 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아사다와 얼마나 깊은 공감을 나누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코칭의 삼대 전제 : [모든 사람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답은 자기자신이 알고 있다]
                             [탁월한 삶을 위해서는 탁월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아사다 마오는 분명히 훌륭한 선수입니다. 지금까지의 수상경력은 물론이고 그녀의 연기를 지켜보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충분히 더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만약 보완해야 할 점과 더 강화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점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강력한 파트너, 진정으로 그녀와 공감하는 코치가 필요합니다.

물론 타라소바코치를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사다 선수 본인이 정신력이 그다지 강한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압박감을 주더라도 정신력을 강하게 다질 수 있는 타라소바 코치가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겠죠.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찾지 못한 자신감이 외부의 코치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외부의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자신감은 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왜 그럴까요?

 

 

< self1 VS self2 >

 

스포츠게임을 할 때 특히 실수를 하거나 할때면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이것밖에 못해?'  '이렇게 하면 안되는거 알면서 왜그래?'  '바보같이 똑같은 실수를 했잖아!'  '그 반대로 했어야지!'
'정말 최악이야 이 멍청한 것아' ...................................

여기서 지시하고 평가하는 쪽을 self1이라고 하고 듣기만 하는 쪽을 self2라고 합니다.
self1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경기를 하는 주체인 self2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self2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코치가 가르쳐준 대로 통제하려고 듭니다. 즉 코치의 가르침이 학생의 self1으로 내재화된 것이죠. 그래서 선수는 코치의 지적을 비난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섬세한 self2는 움츠러들게 됩니다.
self2는 잠재력이자 근원이며 자기 자신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어린아이 일때 self2로 살았습니다.

self1이 조용해지고 self2가 집중된 상태에서 게임을 할 때 능력이 최고로 발휘됩니다. 선수들이 최고의 성적을 냈을 때 심리상태를 보면 불안감이나 의구심 없이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우며 편안한 상태입니다. self1의 압박으로 경직된 상태보다 self2로서 이완된 상태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때 집중력이 높아지고 성과가 훨씬 좋습니다.
억지로 집중을 하기 위한 훈련은 self2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는 집중은 사람을 지치게 하죠.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 눈으로 파리를 쫓는 고양이의 모습이 self2가 온전히 집중하는 예입니다.
그리고 코치의 언행은 self2에 대한 선수의 신뢰를 높일 수도 저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성과를 내고 싶은 코치라면 항상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두 코치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오서코치는 self2의 자유로움을 존중하고 타라소바코치는 self1의 통제력을 이용합니다.
이 두 사람의 성과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코치가 해야 할 것은 비평하지 않는 것, 과잉지시하지 않는 것, 과잉통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self1를 강화시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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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쉘 콴은 1996년 동계올림픽에서 기대했던 금메달을 받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후 기자는 그녀에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콴은 대답했다.
"제 목표는 올림픽 경기에서 제가 가진 솜씨를 모두 발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제 실력을 최대한 발휘했습니다. 저는 은메달을 받았지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좌절감을 캐내려고 했던 기자단의 압력에 진실한 대답을 던졌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저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self2의 정직함입니다. 저는 그녀의 경기를 본 적이 없지만 저 인터뷰를 볼 때 그 경기는 분명 뛰어났을 것입니다.
내적 방해물(self1)을 제거하고 본래의 재능과 자질을 남김 없이 밖으로 표출함으로써 그녀는 관객을 매료시켰고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스케이터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선수이기도 하죠.

아사다가 스파이럴 시퀀스를 연기할 때를 보면 그녀가 스케이팅을 얼마나 사랑하고 행복해 하는지 느껴집니다.
그리고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도 함께. 그때만은 그녀도 온전히 self2로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재소녀의 좌절, 그리고 재도약>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빙판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고 짜릿합니다. 하지만 그 한번의 점프를 위해 그들은 얼음장 위에 수없이 내동댕이쳐지고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을 것입니다.

 

                                      

 

언제나 점프가 쉽게 이루어지고 100% 성공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아름다울까요? 몇 초 간의 비상, 그 찰나의 순간에 성공이냐 실패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이 성공했을 때 우리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찬사를 보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꼴사나운 모습으로 얼음판 위에 뒹굴더라도, 다음 순간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끝없이 도전하고, 또 쓰러지곤 합니다.

만약 아사다 마오 선수가 지금이 선수인생에 있어 최악의 슬럼프라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최고의 경험입니다. 우리는 흔히 '바닥을 친다' 라는 표현을 쓰죠. 더 이상 물러날 수도 없이 떨어진 상태라면 지금이야말로 바닥을 박차고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런지요.  그 기회는 몇 년에 한번 일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것에서 하루에 몇 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을 자주 칠수록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것이고 바닥을 세게 칠수록 더 높은 점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험에 있어서 나쁜 것, 좋은 것이라는 판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경험은 최고의 경험입니다. 전세계에서 톱을 달리다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60억 인구 중에 몇 명이나 해 볼 수 있을까요?

 

제게 있어 최고의 최악은 20대였습니다. 제 인생 최악의 암흑기였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좌절감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던 시기였죠. 그것을 인정하는 것조차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 그 경험들이 내가 겪은 최악 중에서도 최고의 최악이었다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아쉽기도 합니다. 제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였으니까요.

 


<자신과의 싸움>

 

피겨스케이팅만큼 정치적인 스포츠도 없습니다.
한때 동서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 두 거물들이 금메달 수를 통해 파워게임을 하던 시대에 국위 선양을 위해 이용되기도 했고 지금은 일본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세계빙상연맹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선수가 빙판에 선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 저항, 그리고 에고가 끈적하게 뒤섞인 정점 위에 서는 것입니다. 당연히 심리적 압박감이 클 수 밖에 없겠죠.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김연아에 대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 바로 정신력입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바로 잊고 다음 연기를 준비하는 것.
그 자신이 선수 시절 이미 겪었기 때문에 그 압박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알고, 그래서 그점이 김연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요즘 아사다는 연습할때 항상 혼자라고 합니다. 타라소바코치가 곁에서 지켜봐주며 도와주는 것도 아니므로 점프를 교정하는 것이 시급한 그녀로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점프연습을 할 때에는 모든 스탭들을 다 내보내고 어머니만 지켜보는 가운데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경기를 제대로 모니터하지 않는다고 하니 앞으로 좋은 경기성적을 낼 수 있을지 안타깝습니다.

 만약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면 그녀는 더 이상 성장해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피겨신동으로, 스타로 자라왔고 피겨에서 금메달리스트를 만들어내겠다는 일본빙상계의 프로젝트 덕분으로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누려온 그녀에게는 지금의 경험이 엄청난 좌절일 수도 있습니다. 온 국민들의 바램과 기대, 반드시 우승하기를 바라는 일본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지금의 슬럼프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이제라도 점프기술을 교정하는 것이 고득점을 향한 유일한 길인진대 자존심 때문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그녀가 self1 때문에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녀는 연기를 마치고 실수가 많았다고 느껴지면 언제나 고개를 깊이 떨구곤 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그 표정이 언제나 안타까웠습니다. 저 연기를 위해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연습했을 텐데, 그리고 실수보다 잘한 것이 더 많았는데. 좀더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그 모습은 과거에 한 실수를 잊지 못하고 수없이 곱씹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던 제 과거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었기에 그토록 깊은 공감이 일어났었나 봅니다.

정신력을 코칭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자신에 대한 100% 인정과 100% 책임지기'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감정이 있는 존재인지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상은 높은데 거기에 따라주지 않는 내 몸과 의지 때문에 자신을 학대하곤 하죠. 바로 그것이 self1의 악마같은 속삭임입니다.

 


< slow-fast >

 

대니박코치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자 지금 김연아와 아사마 마오의 격차가 벌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여러 기술 중에서도 점프는 그야말로 '피겨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합니다. 아사다도 어릴 적부터 점프기술을 익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의 기본을 다지기도 전에 무리하게 트리플악셀을 연습한 덕에 '천재소녀'란 명성을 얻었지만 오늘날 점프기술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트리플악셀이란 공중에서 3바퀴반을 도는 점프입니다. 공중에서 반바퀴를 더 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여자선수들 중에서는 이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가 드뭅니다.)
김연아 선수의 점프를 교과서라고 하는 이유는 점프교본에 나와 있는대로 인엣지와 아웃엣지를 정확하게 사용하기 때문이죠. 스케이트 바닥에는 날(edge)이 두개인데 총 5개의 점프마다 사용해야 하는 엣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규정을 지키는 선수는 거의 없었고 자신이 뛰기 편한대로 엣지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아사다도 그 중 한명이었죠.
하지만 심판들의 편파적인 점수가 문제로 불거지자 세계빙상연맹 측에서는 점프시 엣지사용에 엄격하게 점수를 부과하기로 했고 선수들은 점프를 교정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습관화 되어버린 점프를 교정하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다시 처음으로 점프를 익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다 몸에 익어버린 습관이 자꾸 나오기 때문이죠.
아사다 마오는 점프를 교정하지 않고 계속 하던대로 가는 방식을 택했지만 점프를 뛸 때마다 다운그레이드를 받고 '속임수점프'란 비난을 듣게 되니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특히 트리플악셀은 성공률이 반밖에 안되는데다 계속 그 기술에 집착하다 보니 잘 구사하던 다른 점프들도 전체적으로 흔들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기가 워낙 탄탄했던 김연아선수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었죠. 그녀가 뛰는 모든 점프에 엄청난 가산점이 붙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성경에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던가요?
기본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탄탄히 다지는 것이 결국 가장 빨리 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저도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것을 생각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 진짜에겐 진짜를 >

 

 모 카메라 CF의 카피이기도 하죠.

아사다 마오는 진짜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여기서 진짜란 self2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존재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사람은 다 진짜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떻든지 간에 말이죠.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는 '진짜'코치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녀가 좀 더 즐겁게 경기를 하기 바랍니다. 주니어 시절 때 그랬듯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감을 다시 느끼기 바랍니다. 경기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그녀는 최고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이 두 사람은 제게 피겨의 즐거움에 대해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피겨가 단순히 스포츠가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예술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제 인생의 기쁨은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두 선수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각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경험하고 느끼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이들이 빙판 위에서 다시 날아오를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늘로 도약할 때 그 순간의 벅찬 희열과 짜릿함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기를. 그들의 심장소리와 지금 살아 있음을 다시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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